일반상식/잡학상식

말죽거리란? 말죽거리의 유래

▨A포스터▨ 2023. 4. 9.

말죽거리

말죽거리는 조선시대 한자어로 마죽거리(馬竹巨里)라 표기했던 지역을 말합니다. 현대의 지명은 양재동 부근입니다.

 

양재역 4번 출구에 있는 말죽거리의 유래 바위에 그 유래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말죽거리 바위
말죽거리 바위

말죽거리의 유래 - 석포 주계문

말죽거리의 유래

말죽거리 (馬粥巨里)는 우리가 흔히 부르는 이름이며 각종 기록에는 양재역으로 되어있다

양재역은 한양 도성에서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등 삼남으로 나가고 들어오는 교통상의 요충지였다

관리들은 역에서 대기하고 있는 말을 징발하거나 삼십리마다 설치된 역으로 말을 바꾸어 탈 수 있었으며 일반 백성들은 먼길을 가는 경우 역 부근의 주막에서 여정을 풀고 말도 쉬게 하였다

긴 여정을 위해 말죽을 많이 먹여야 하는 거리였으므로 말죽거리라는 이름이 붙여졌을 것으로 보여지며 속설에 의하면 조선 인조가 이괄의 난을 피하여 남쪽으로 피난가던중 이곳에서 말을 탄채로 팥죽을 먹었기 때문에 말죽거리로 불리워졌다는 이야기도 전하여 지고 있다

서기 2003년 6월 20일 강남구 도곡제1동에서 세우고 석포 주계문 쓰다

*주: 석포 주계문 - 한국의 서예가
1리: 리는 시대에 따라 다른데 대략 400m 정도로 본다. 삼십리는 12Km 정도

 

지도에서 보면 양채전은 말에 물을 먹이기 좋은 환경이고 역이라는 말처럼 스테이션 개념입니다. (말이 고속의 교통수단이었던 시대) 말도 죽을 먹이고 사람도 쉬고 할 필요가 있었겠지요. 자연스럽게 그런 거리가 형성될 수 있었습니다.

 

양재천 말죽거리

한양도성(현재의 경복궁 위치)에서 남산을 지나 한강을 건너면 서울의 남쪽으로 갈 수 있는 두개의 길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관악산과 우면산의 경계인 남태령 쪽 길이고 다른 하나는 양재쪽 입니다. 그런데 남태령은 일제시대에 관악산을 깎아서 확장한 길이고 서해안쪽 길입니다. 충청도와 전라도 경상도의 삼남으로 향하기에는 돌아가는 길이되지요. (대전, 광주, 부산의 위치를 생각하면됨)

아래 지도는 현대의 도로 지도지만 조선시대라고 생각을 해보면 양재역 말죽거리는 한양의 남쪽 관문과 같습니다. 경부고속도로가 양재 IC를 타고 내려가는 것은 조선시대 때 부터의 교통 상황도 반영한 것으로 알 수 있지요. 여기에서 남쪽의 주요도시까지 연결이 됩니다. (경부고속도로는 부산까지 이며 광주쪽은 대전에서 호남고속도로로 간다) 마사회의 렛츠런 뉴스에 따르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거리가 대략 450Km 가 되는데(1000리) 조선시대에는 이 사이에 30여개의 역이 있었다고 합니다. 말의 속도를 풀로 활용하면 시속 60-70Km에서 15시간에 서울에 도착할 수 있었으나 보통은 사흘(3일) 정도 걸렸다고 합니다. 말타고 달리는 사람도 밥도 먹고 쉬어야 하고 역에서 말을 갈아타는데 시간도 걸렸을 테니까 납득이 갑니다. 그렇게 남쪽에서 올라온 관리가 양재역에 도착하면 이제야 도착했구나- 안도했을 것 같습니다.

 

말죽거리 경부고속국도

말죽거리에는 세상이 발달한 지금은 당연히 말이 없습니다. 뭐 양재천을 따라서 청계산 북쪽에 렛츠런 파크가 있기 때문에 아직도 옛 흔적이 있는 것 아니냐 - 라고도 생각하면 그만인데요. 말대신에 차들이 고속으로 이동하는 경부고속도로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고 보는게 더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조선시대 말을 탈 수 있는 역은 마패를 가진 높은 사람들만 이용가능 했다고 합니다. 지금이야 일반인도 얼마든지 고속버스나 자가용을 타고 다닐 수 있으니 확실히 좋은 시대를 살고 있는게 이해가 되네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