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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인제 말투는 왜 쓰는 건가? 뇌피셜 분석

▨A포스터▨ 2022. 5. 27.

최근에 방송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는 단어 중에 이제, 인제가 있습니다. 이런 단어를 불과 몇년전에는 많이 사용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최근에 소리소문 없이 자연스럽게 들어온 현상입니다.

 

이 단어는 방송 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고 또 횟수도 아주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뭐 딱히 어떤 유명인이 많이 쓴다 그렇게 말하기는 뭐 합니다. 언어 습관이기 때문에 본인도 그 말을 쓰는 것 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제, 인제라는 말을 쓰는 걸까? 뇌피셜로 분석 해보겠습니다.

 

 

이제와 인제의 뜻

일단 사전적 정의에서 출발하는게 오해가 적습니다.

 

네이버 국어사전은 이제는 부사로 '바로 이때에, 지나간 때와 단절된 느낌을 준다'고 정의합니다. 인제는 부사로 '이제에 이르러' 입니다.

 

흠... 두 단어는 늬앙스적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이제나 인제나 '이제'가 들어가니까 뜻은 비슷하겠지요. 인제는 이제의 업그레이드 버전(?), 변형된 버전 정도로 이해하겠습니다.

 

이제의 사용

그럼 이제(!?) 이제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이제는 특히 젊은 세대가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 학교에는 과거와 다르게 발표수업이 많지요. 발표 때 이제라는 단어를 수십번 심하면 100번도 하는 학생들도 있다고 합니다.

 

학생들 뿐만 아니라 TV 토론 패널 중에 '이제'를 자주 쓰는 사람이 많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나이가 좀 드신 분들도 이제를 많이 사용합니다. 인제, 인쟈라고 발음하시는 분들은 좀 사투리를 쓰시는 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상황에서 많이 사용하느냐? 이것은 말투이고 습관이기 때문에 그냥 사용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조금 더 이유를 생각해보면 학생들 발표 수업 같은 경우 보통 발표자 본인이 그 주제에 잘 모르고 확신이 없을 때 이제라는 단어를 많이 쓰게 됩니다. 곤란한 질문이 들어왔을 때 '이제 그 문제에 대해서는 제가 알아봤는데요' 이런 식으로 어떤 절대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상대적인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많이 씁니다.

 

TV의 패널 중에서 나이가 드신 분들 중에서도 이제를 쓰는 경우는 학생들과는 조금 다를 수 있겠지요. 예를 들어 어떤 이유를 알기 힘든 질병(코로나19 같은)이 처음 나왔을 때 질병을 연구한 의사라도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하기는 힘듭니다. 그럴 때는 사람들이 그 질병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많은 질문을 하는데요. 아무리 의사라도 새로운 질병은 100%알기 힘드니까 경험을 말하면서 '바이러스 감영을 통계적으로 보면 이제 평균적으로 치사율이 몇% 범위에 있고...' 이런 식으로 약간은 100% 확신은 아니지만 그 사람의 경험을 통해서 믿을 수 있는 말을 하는거지요.

 

'이제' 말투는 광범위하게 쓰이는데 어느정도 전문성을 가진 주제에 대해 이야기할 때 많이 사용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그 부분은요, 이전 모델하고 달라서 추가 비용이 들어갑니다~' 이런 식의 대화를 많이 들을 수 있습니다.

 

이제의 이유

 

제목과 같이 뇌피셜 분석입니다. 이건 그냥 말투기 때문에 아무 생각없이 습관처럼 쓰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한가지 이유로 꼽자면 우리 사회가 어떤 절대적인 권위를 신봉하던 사회에서 민주주의, 다원주의가 진행되다보니까 확신을 가지고 말하던 이전의 말투가 좀 일반인들에게는 비호감이 된 부분이 있습니다. 잘 모르는 내용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고 문장을 말하는게 지금 시대에는 딱히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합니다. 항상 논쟁하는 정치나 경제 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 입니다.

 

어떤 사실을 확신해서 말하기엔 너무 사회가 빠르게 변하고 있기 때문일까요? 예를 들어 스마트폰이란게 없던, 한 2006년도를 떠올려 보면 (너무 오래전이지만) 스마트폰 시대의 상식과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전문가라는게 있었고 그들의 말을 모두 신뢰했습니다. 그런데 스마트폰이 나오고나서? 모두가 전문가... 는 에바더라도 준전문가가 되었습니다. 모르는게 있다면? - 바로 스마트폰으로 찾습니다. 요새는 해외여행가서 웬만한 통역이나 번역이 스마트폰으로 다해결이 됩니다. 스마트폰 이전 시대에는 그게 안됐습니다.

 

그건 좋은 일이긴 한데 사람들이 생각이 변했습니다. 지금도 또 변하고 있지요. 내가 아는 것이 절대적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분야에 따라 전문가 조차도 스마트폰에 밀리고 있는데 보통 사람, 범인(평범한 사람)의 경우 별로 알고있는게 없다고 느끼는 겁니다. 따라서 세상을 바라볼 때 어떤 사물을 바라볼 때 확신을 잘 갖지 않습니다.

 

이제라는 말투를 많이 쓰는 것과 다소 억지로 연결시키려는 부분이 있지만 개인적 뇌피셜입니다. 확신을 잘 하지 않는 것은 또한 선진국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미국에서 지금은 좀 줄어든 것 같은데, you know 라는 말투를 많이 쓰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you know what I mean 엄청 많이 썼습니다. 뜻은 '너도 알잖아', '내가 의미하는게 뭔지 알지?' 그들은 끓임없이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는 말투를 써왔고 지금은 좀 줄은 듯 한데(올드하니까) 그래도 여전히 쓰는 말투 중에 you know 라는 습관이 있습니다.

 

자기가 알고 있는게 100% 절대적이지 않다고 생각할 때 you know 라고 상대방 동의를 구하는 말투를 씁니다. '이제'는 you know의 한국어 버전이 아닐까도 뇌피셜로 다가 상상해 봅니다.

 

어떤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상대방을 무시할 때는 이제, 인제 그런 말투를 안씁니다. 그냥 내말이 맞는거야~ 라고 단정해도 충분히 그 사람의 의도가 전달됩니다. 하지만 지금 시대는 설령 내가 완전하고 절대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더라도 상대방을 배려하고 수위를 낮추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이제'는 너무 남발해서 이상하게 느껴지지만 그런 타인을 의식하는 상대적인 지식을 추구하는 현대인 그리고 선진국민의 특성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타인을 의식한다는 것 굉장히 중요한 소질입니다. 최근 몇년간 우리나라가 KPOP, 영화, 드라마 등 콘텐츠 분야에서 엄청난 약진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밑바탕에는 타인에 대한 의식, 공감능력의 발달과 연관이 있습니다. 90년대 2000년대초의 한국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남을 의식하지 않고 단정적인 말투를 많이 구사했습니다. 그게 사회적인 분위기였으니까요. 절대적인 가치가 더 중요했습니다.

 

하지만 2022년은 상대적 가치가 더 중요합니다. 이제 라는 단어를 많이 써야 사람들이 편안하게 느낄 정도로 말이지요. 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내온 사람으로써는 격세지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제' 라는 말투를 많이 쓰는 사람들이 있는데 공감의 소질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크게 거슬릴 정도가 아니라면 나쁜 언어 습관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90년대를 생각해보면 사회적으로 이런 말투도 강제로 교정하던 시대였습니다 ㅋㅋㅋ 90년대 TV 인터뷰 같은 것을 들어보면 지금 북한 TV인터뷰와 별 차이가 없습니다. 참 돌아보면 재미있지요. 사회에 따라 공감능력이 뛰어난 사람도 성격을 강제로 개조시키는 겁니다.

 

제가 볼 때 이제 말버릇을 고칠 필요는 없습니다. 본인이 경험과 지식이 늘어나면 이제라는 말은 점점 더 줄어들겁니다. 상대적인 시대라고 말했지만 이 세상은 영원히 상대적인 것도 절대적인 것도 없습니다. 그 사이에 균형이 있을 뿐입니다.

 

사회인들에 비해 경험과 지식의 양이 부족한 학생들이 그 말투를 쓰는 것은 당연한데 그들도 시간이 지나 본인의 확신 같은 것이 생기다 보면 말투가 바뀔겁니다.

 

흠... 써놓고 보니 아무도 관심이 없는 주제에 대해서 몰입한 듯 하지만 '이제'를 왜이렇게 많이 쓰는가에 대한 하나의 뇌피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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